[한강타임즈 이지연 기자] 지난해 5월 경북에 사는 20대 여성이 재래식 화장실 변기에서 영아를 출산한 뒤 변기에 빠뜨려 방치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여성은 임신 사실이 주변에 밝혀지는 걸 두려워해 출산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영아살해와 시신 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혼모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입양·낙태로 좁혀진다. 반대로 엄마가 되길 선택하는 순간부터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한다. 이 같은 인식과 편견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영아유기·살해와 무관하지 않다. 낙태를 금지하면서 미혼모의 양육 지원에 소홀한 국가 정책은 모순이다.
“낙태와 입양의 선택지에서 도망쳐 엄마가 되는 순간 미혼모들은 가난해져요”
한국미혼모협회 김도경 대표는 미혼모들의 삶을 살피고 세상에 당당히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김 대표는 2009년 협회가 처음 결성됐을 때 즈음 함께한 초기멤버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가족과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고민을 터놓고 싶어 협회의 문을 두드린 게 시작이었다. 이후 자신이 받은 위안을 다른 미혼모들에게도 전해주고자 1년간 부대표를 거쳐 작년 2월 대표로 취임했다.
- 미혼모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처에 많이 노출될 일도 많았을 텐데, 함께 활동하는데 있어서 조심스럽거나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같은 당사자의 입장이니 편하게 대할 수 있다. 굳이 서로 알아내려고,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 상담을 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우린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니깐. 결국은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 사람들이 다보니 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실제 미혼모가 되는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나?
“미혼모가 되는 사유는 다양하다. 사귀던 도중 임신을 하는 경우, 결혼을 약속했는데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변심해 떠나는 경우 이 외에도 사별, 성폭행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 미혼모로서 받는 차별은 무엇인가?
“미혼모는 임신하는 순간부터 차별을 받는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차별과 편견은 더욱 거세진다. ‘애비 없는 자식을 왜 낳으려고 하냐’, ‘애 아빠랑 잘해서 결혼을 하지 그랬냐’, ‘남의 세금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하냐’는 등의 거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를 낳으러 산부인과를 가도 의사가 입양을 권유한다. 제왕절개로 마취도 덜 깬 상태에서 입양기관의 입양권유를 들을 때도 있다”
- 법이 바뀌면서 미혼모에게 입양을 강권하는 일이 최근엔 없지 않나?
“지난해 11월부터 5월 2일까지 지방간담회와 정기모임에서 엄마들이 밝힌 실제 사례들이다. 그 엄마들이 낳은 아이들이 이제 돌이 지났으니, 옛날 일이 아니다. 불과 1년여 전에 일어난 일들인 것이다”
- 아이들이 느끼는 차별도 있을 텐데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제일 친한 친구한테 애비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직접 나에게 말해준 것은 아니고, 아동센터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다. 아이가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다 어른들의 입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이 왔다는 거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어른들로 인해 차별과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여전히 국내 입양아 중 89.7%·해외 입양아 98%가 미혼모 아동들이었다. 미혼여성이 임신을 하면 아직도 주변에선 대부분 낙태·입양을 권유한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미혼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혼모의 90% 이상이 가족 및 남자친구로부터 낙태나 입양을 권유받았다. 입양은 최후의 선택이고 낳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결국 입양이 되는 이유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 때문이 아닌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에서 해외입양은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 주변에서 아이 키우길 만류하는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도 배재할 수 없는 부분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가난하다고 입양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남자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도망쳐 아이를 지킨 여성들이 많다. 가난한 여자들이 미혼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가도 임신 때문에 쫓겨나기도 하고, 회사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만두기도 한다. 엄마가 되길 선택하고 나서부터 가난해지는 것이다. 지원을 받고자 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수입 및 직장이 없어야 가능하다. 정부가 나서 미혼모들의 경제적 고립을 부추기는 셈이다”
- 최근 여대생이 아이를 출산한 뒤 아파트 복도에서 신생아를 구조했다고 벌인 자작극과 관련해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지적했다. 이를 볼 때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많이 완화되는 추세라고 생각하는데
“10년 전 국회에서 미혼모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혼모 정책이 오히려 미혼모를 양산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이 많았다. 지금은 컨퍼런스를 알리는 현수막에 미혼모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적었음에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다. 예전엔 미혼모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기도 어려웠다. 표면상으로 보면 미혼모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에서의 편견은 존재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미혼모라고 밝히는 경우 좋은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 미혼모에게 필요한 실질적 도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
“주거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정부는 시설 확충이 미혼모 주거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설 수급비를 월세와 같은 재가지원금으로 사용한다면 미혼모들이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떠나 살지 않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
“시설은 아이가 백일이 되면 나와야 한다. 이후 2차 시설인 그룹홈으로 가면 집 하나에 방 세 개, 거실 및 화장실 같이 쓰는 구조에서 아이를 키운다. 이후 아이가 한 돌이 되면 동주민센터에서 경제적 활동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미혼모 시설에 들어갈 땐 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는데 말이다. 정부의 주거정책도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가지원원금을 늘려 미혼모가 한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
- 현재 추진 중인 한국미혼모협회의 계획은 무엇인가?
“광주, 부산, 천안, 원주 4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미혼모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지방에는 당사자단체가 없다. 지방에서도 서울과 같이 엄마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당사자 단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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