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타임즈= 손우현 기자
우리는 심심함을 점점 더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경험하는 능력이 위축된다. 꿈 새는 종이 숲 Blatterwald(신문)에서 벌써 절멸한다. "삽화를 포함한 종이들의 숲에서 그[꿈 새]는 퇴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행위 안에도 꿈 새가 들어설 자리가 더는 없다. […] 인간에게 창조하는 손을 주던 한가로움은 절멸했다." 창조하는 손은 행위하지 않는다. 그 손은 귀 기울인다. 그러나 디지털 종이 숲인 인터넷은 우리에게서 "귀 기울이는 재능"을 앗아간다. 경험의 알을 품는 꿈 새는 움직임 없이 관조하는 사람과 유사 하다. 그 사람은 기다리면서 자신을 무의식적인 일들"에 내맡긴다. 외부에서 보면 그는 행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무위는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기다림은 특정한 목표를 향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 된다. 우리가 특정한 무언가를 기대할 때, 우리는 덜 기다리며 우리 자신을 폐쇄하여 무의식적인 일들로부터 격리한 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을 때, 심지어 기다림 의 종결마저도 기다리지 않을 때 시작된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대상을 알지 못하며 파괴한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림은 관조하며 무위하는 자 의 정신적 태도다. 그에게는 전혀 다른 실제가 열린다. 어떤 활동도, 어떤 행위도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무위의 풍경들〉, 〈장자에게 붙이는 사족〉, 〈행위에서 존재로〉 등 여섯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저자의 전작들(『시간의 향기』와 『피로사회』,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등)에서 선보였던 ‘삶의 가속화’, ‘존재의 결핍’ 등의 우리 시대의 중요한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다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초기 낭만주의자, 현대 철학자까지 주요 사상가들(플라톤, 노발리스, 한나 아렌트, 니체, 발터 벤야민 등)의 글과 주요 개념들을 폭넓게 인용, 또는 반박하면서 ‘무위’의 숨겨진 역할과 가치, 창조적 힘에 주목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 실린 섬세한 비평을 통해 한병철 특유의 미학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병철 저/전대호 역 | 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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