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타임즈 송범석 기자] 12개 구단이 있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매년 드래프트 1위가 열두 명 탄생한다. 모든 구단이 그해에 선택할 수 있는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재를 엄선해 지명한다. 드래프트 1위는 말 그대로 최고의 자리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일단 드래프트 1위로 지명이 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그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 프로라는 무대에서 무너져 내린 선수들 말이다.
1977년 효고현에서 태어난 마토바 간이치는 한신 타이거스에 드래프트 1위로 지명이 된 선수이다. 그는 영광은 물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하는 팬들의 시선의 무게까지 견뎌야 하는 선수가 되었다. 1999년 당시 한신은 오랜 침체기를 종식시키고 명문 구단으로의 첫 발걸음을 막 뗀 참이었다. 모든 기자는 드래프트 1위를 차지한 마토바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로 내보냈고, 마토바의 중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상이 문제였다. 마토바는 2000년 4월 11일 1군으로 데뷔를 했지만, 왼쪽 무릎을 다쳐 프로 1년차에는 11경기 출장에 그쳤고, 안타는 겨우 5개에 그쳤다.
이후 수술을 하게 되었고 재활을 했지만 수술한 곳이 제대로 낫지 않아 계속 재활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문제였던 무릎 상태가 조금씩 좋아져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자 슬럼프에 빠졌던 마토바도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깨 탈구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부상 때문에 거의 6년간 겨우 24경기를 출장했고, 기록한 안타는 7개뿐이었다. 드래프트 1위로 뽑힌 선수치고는 너무 초라한 성적이었다. 이때 마토바는 전력에서 제외된다는 구단 측 통보를 받게 된다.
야구를 그만 둘까도 생각을 했지만, 마토바는 이렇게는 그만둘 수 없었다. 이후 12개 구단 합동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고, 대신 사회인 야구의 강호인 도요타자동차로 적을 옮겼다. 일본의 경우에는 사회인 야구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7년 도요타자동차는 일본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에는 2연패를 달성했으며, 마토바는 2009년에는 타율이 5할까지 뻗어 나갔다. 2012년까지 펄펄 날아다녔던 그는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일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이후 은퇴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그의 이야기의 종착역은 아니다. 도요타자동차의 회사원으로 마토바는 제2의 인생을 산다. 양복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하루 인사담당 업무를 했는데, 자존심 같은 건 내다버리고 나이가 어린 사원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일을 배워나갔다.
“윗분이나 나이 어린 친구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죠. 처음에는 쌀쌀맞던 사람도 차츰 받아들여 주더군요. 역시 중요한 건 일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p71)
마토바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업계 1위로 누구나 선망하는 도요타자동차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지금은 언더아머 베이스볼 하우스의 점장을 맡으면서 어린이들에게 레슨을 하거나 야구 교실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는 화려하게 데뷔한 야구선수들의 잔혹사이다. 그러나 제목 그대로 다시 일어나 걷는 그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야구에서는 100%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꾸면서 그들의 씨앗은 서서히 결실을 맺는다. 맞다. 가장 중요한 건 ‘삶을 대하는 자세’이며 그 자세만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한 때 넘어지고 쓰러졌던 드래프트 1위 출신 선수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드래프트 1위였으며 현재 스카우터로 활약하는 투수 다다노 가즈히토. 2001년 닛폰햄 파이터스 드래프트 1위였으며 현재 IT 영업자로 일하는 투수 에지리 신타로.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드래프트 1위였으며 현재 독립리그 감독인 투수 가와하라 준이치. 1993년 한신 타이거스 드래프트 1위였으며 현재 야구 해설자로 활약하는 투수 야부 게이이치. 그들은 모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경력을 시작했지만, 부상과 슬럼프를 겪거나 프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실망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꿈의 구장’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저마다 치열하게 투쟁했고, 이제 새로운 ‘삶의 구장’에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모토나가 도모히로 지음 / 돌베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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